중년기에 TV를 자주 시청한 사람들은 20여 년 뒤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의 부피가 줄어들고 치매 위험을 높이는 뇌 손상이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같은 '앉아서 하는 활동(좌식 생활)'이라도 직장에서 일하며 오래 앉아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이 관찰돼 주목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나탄 페테르 박사와 데이비드 라이클런 교수 연구팀은 20일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병과 치매(Alzheimer's & Dementia)'를 통해 중년기의 좌식 생활 습관과 20여 년 뒤 뇌 자기공명영상(MRI) 간의 연관성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TV 시청, 알츠하이머 취약 부위 및 뇌백질 손상 유발
치매 예방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이 중요하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오래 앉아 있는 생활 습관 자체가 뇌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TV 시청과 사무직 업무처럼 형태가 다른 좌식 행동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 동일한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미국의 장기 추적조사인 '지역사회 죽상동맥경화증 위험(ARIC)' 연구 참가자 1천712명을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평균 53세였던 1987~1989년에 여가 시간 TV 시청 빈도와 직장에서 앉아 있는 시간을 보고했으며, 2011~2013년에 뇌 MRI를 촬영해 뇌 구조 변화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중년기에 TV를 '자주 또는 매우 자주' 본 사람들은 '전혀 또는 거의' 보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뚜렷한 뇌 구조적 차이를 보였다.
해마 및 내후각겉질: 알츠하이머병에서 초기에 변화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뇌 영역(ADSR)의 부피가 더 작았다.
전두엽 및 후두엽: 계획·판단 등 고차원적 사고를 맡는 전두엽과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후두엽의 부피도 감소했다.
백질고신호(WMH): 뇌의 작은 혈관 손상을 보여주는 백질고신호가 더 많았다.
백질고신호는 뇌 백질이 손상되어 MRI에서 밝게 보이는 병변으로, 나이가 들면서 증가하며 뇌 소혈관 질환, 인지기능 저하, 치매 위험 증가를 알리는 주요 지표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신체활동량, 흡연, 음주, 체질량지수(BMI), 당뇨병 등의 교란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TV 시청 습관 그 자체가 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직장 내 좌식 생활은 오히려 '뇌 건강'에 도움
반면, 직장에서 오래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관찰됐다. 직장에서 자주 또는 항상 앉아서 일한다고 답한 사람들은 백질고신호가 더 적었으며, 전두엽·후두엽·두정엽의 부피는 오히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두 현상의 차이가 '인지적 부담의 정도'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직장에서 앉아 있는 활동은 종종 인지적 부담이 크고 지속적인 인지 활동, 목표 지향적 행동, 의사결정을 수반하는 반면, TV 시청은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고 인지적 자극이 적은 좌식 행동이기 때문에 뇌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교신저자인 나탄 페테르 박사는 "이번 연구는 앉아서 하는 활동의 종류에 따라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향후 대중 건강 권고안에는 단순하게 '오래 앉아 있지 말라'는 조언을 넘어, '어떤 활동을 하며 앉아 있는지' 그 내용까지 함께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TV 시청이 직접적으로 뇌 위축이나 치매를 유발한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이 아니라 두 현상 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관찰 연구라며, 정확한 인과관계 확인을 위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