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에 모범을 보여야 할 의료기관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당당히 거부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한 청각장애인 직원에 대한 부당한 업무 배치 문제가 불거진 경기도 소재 병원이 인권위의 '재발 방지책 마련' 권고를 끝내 외면하면서, 의약·보건 분야의 인권 감수성 부재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지난해 5월 진정 제기된 경기도 소재 한 병원의 청각장애인 직원 A씨에 대한 차별 행위에 대해 재발 방지 권고를 내렸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이를 전면 거부했으며, 인권위는 병원의 권고 불수용 사실을 공표하고 법무부장관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의료기관이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정면으로 거부한 초유의 사태는 의료계 안팎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청각장애인 직원 A씨가 육아휴직 후 복귀하면서부터다. 과거 간호사였던 A씨는 보험심사관리사 자격을 취득한 후 병원에 복직했다. 그러나 병원은 A씨를 건강검진센터로 발령했고, 해당 부서의 주된 업무는 안내데스크 전화 응대로 전체 업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각장애를 가진 A씨에게 전화 응대 업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부당한 배치였다. 이에 A씨는 2025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며 병원 측의 부당한 차별을 주장했다.
인권위는 A씨의 진정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병원의 업무 배치가 명백한 장애인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다. 특히 「전화 응대가 전체 업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는 구체적 사실을 근거로, 청각장애인 직원에 대한 해당 부서 배치는 합리적 편의 제공 의무를 다하지 않은 차별 행위라고 결론 내렸다. 인권위는 병원장에게 ▲특별인권 교육 수강 ▲육아휴직 복귀자 및 장애인 직원에 대한 재발 방지 인사 매뉴얼 마련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병원은 「A씨가 육아휴직 복귀 전 사전 면담에서도 해당 팀 배치에 동의했고, 기존 업무와 복직 후 배치된 업무는 유사한 성격이라 청각장애를 고려한 배치였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병원 측의 해명은 인권위가 「전화 응대가 전체 업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해 청각장애를 고려한 배치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인권위는 병원의 권고 불수용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적인 후속 조치를 단행했다. 병원의 권고 불수용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법무부장관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는 병원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더불어 향후 법적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병원의 문제를 넘어 의약·보건 분야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의료기관은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특수성을 넘어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 할 책임을 지닌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의료기관 내에서도 장애인 직원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 감수성과 차별 금지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의약·보건 기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직원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차별 없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됐다. 병원의 인권위 권고 불수용이 향후 어떤 추가 법적 또는 사회적 압력으로 이어질지,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그 추이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