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에너지 안보 강화와 국가 경제 경쟁력 회복을 위해 약 40년 만에 원자력 발전 체제로의 복귀를 공식화한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을 골자로 하는 원전 재개 법안을 올여름 의회에 제출하며 국가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단행한다.
이탈리아 정부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유지해 온 탈원전 기조를 전면 폐기하고 원자력 발전 산업의 부활을 추진한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로이터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원전 재개를 위한 입법 절차를 올여름 내로 착수할 계획이다. 이는 1987년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가동을 중단한 지 약 40년 만에 이뤄지는 역사적인 결정으로 평가받는다.
멜로니 총리는 최근 상원 연설에서 현재의 지정학적 위기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강하게 경고했다. 그녀는 복잡한 국제 경제 환경과 에너지 공급망의 불안정이 가계의 구매력과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공급원의 다변화가 단순한 선택의 문제를 넘어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탈원전 역사는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 시작된 국민적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 1987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원전 중단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함에 따라 이탈리아는 가동 중이던 모든 원자로를 전면 폐쇄하는 길을 택했다. 이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도 90% 이상의 유권자가 원전 복귀에 반대하며 탈원전 기조는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심화하는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는 이탈리아 내부의 여론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천연가스 수입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이탈리아는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에 매우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유럽 내에서도 전기요금이 가장 높은 국가로 분류되면서 산업계의 생산 원가 부담이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는 이탈리아의 에너지 수급 불안을 극대화하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해상 운송로의 불안정성이 가시화되면서 천연가스 수급망이 위협받자 안정적인 기저 부하 전력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러한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자립도를 확보하기 위해 원전 복귀라는 전략적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태양광과 풍력, 지열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며 에너지 전환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현대 산업 구조가 요구하는 거대한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당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상 조건에 따른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 에너지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멜로니 정부는 기존의 대형 원전 대신 차세대 기술인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중심으로 원자력 산업을 재건한다는 구체적인 방침을 세웠다. SMR은 안전성이 높고 건설 기간이 짧아 부지 선정과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는 이를 통해 원자력 생태계를 복원하고 차세대 에너지 기술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탈리아의 이러한 행보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재평가가 확산하고 있는 유럽 전체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벨기에와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 과거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던 국가들이 잇따라 폐쇄 계획을 수정하거나 원전 신설을 검토 중이다. 유럽 대륙 전반에서 에너지 주권 확보를 위한 이른바 '원전 르네상스' 현상이 뚜렷하게 관측되는 양상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역시 지난 3월 탈원전 정책을 '전략적 실수'라고 규정하며 정책 기조의 대대적인 변화를 시사했다. 그녀는 탄소 중립 목표 달성과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자력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EU 지도부의 이러한 인식 변화는 멜로니 정부의 원전 복귀 추진에 강력한 정치적 명분과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원전 재개 과정에서 과거 국민투표 결과를 중시하는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은 정부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다. 반대 측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과거 두 차례의 국민투표에서 나타난 민의를 행정적 절차만으로 뒤집는 것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탈리아의 원전 복귀가 유럽 에너지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는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원전 재개는 단순히 전력 생산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유럽의 에너지 대외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산업계 역시 원전 도입을 통한 전기요금 안정화가 제조업 부활과 경제 재도약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향후 이탈리아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구체적인 SMR 건설 부지 선정과 글로벌 기술 파트너십 체결 등 후속 조치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멜로니 정부는 원전 산업 재건을 통해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고 유럽 내 에너지 허브로서의 입지를 다진다는 구상이다. 40년 만의 원전 복귀가 이탈리아의 산업 경쟁력 제고와 에너지 안보 확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