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사람은 성인이 된 뒤 우울증을 진단받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이는 이혼 자체보다 부모의 정신질환이나 물질사용장애 등 가정 내 어려움의 영향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에스메 풀러-톰슨 교수 연구팀은 31일 국제학술지 'Psychiatry Research(정신의학 연구)'에 발표한 연구에서 미국 성인 12만8천여 명을 분석한 결과, 부모의 이혼과 성인기 우울증 사이의 연관성은 부모의 정신건강과 물질사용 문제를 함께 고려하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행동위험요인감시체계(BRFSS) 2021~2024년 자료를 활용해 18세 이상 성인 12만8,264명을 대상으로 부모의 혼인 상태와 부모의 정신질환, 물질사용장애, 성인기 우울증 진단 여부 등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 가운데 25.8%는 18세 이전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으며, 전체 응답자의 15.5%는 평생 한 차례 이상 우울증을 진단받았다고 응답했다.
조사 결과 부모가 이혼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의 성인기 우울증 진단율은 19.2%로, 부모가 이혼하지 않은 사람의 14.1%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른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을 경우 부모 이혼 경험자의 우울증 진단 가능성은 약 41%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연구팀이 부모의 정신질환과 물질사용장애를 함께 분석에 반영하자 결과는 달라졌다.
부모의 정신질환을 고려했을 때 부모 이혼과 성인기 우울증의 연관성은 68% 감소했고, 부모의 물질사용장애를 반영하면 49% 감소했다.
특히 두 요인을 동시에 고려한 분석에서는 부모 이혼과 성인기 우울증 사이의 연관성이 85% 감소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이 아니었다.
부모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경우 역시 성인기 우울증 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났지만, 부모의 정신질환과 물질사용장애를 함께 고려하면 이 역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에서는 부모의 정신질환과 물질사용 문제가 부모 이혼 집단에서 더 흔하게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어린 시절 부모의 정신질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부모가 이혼한 집단에서 20.8%, 이혼하지 않은 집단에서는 9.4%였다. 부모의 물질사용장애 경험 역시 각각 35.0%와 15.3%로 큰 차이를 보였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부모의 혼인 상태 자체보다 부모의 정신건강, 물질사용 문제, 정서적 학대와 방임, 가정폭력 목격 등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역경이 장기적인 정신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에스메 풀러-톰슨 교수는 "아이들의 미래 정신건강은 부모의 혼인 상태보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며 "부모의 정신질환과 물질사용 문제를 줄이기 위한 지원은 부모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정신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저자인 미국 알링턴 텍사스대학교 필립 바이든 교수도 "정신질환이나 물질사용장애를 겪는 부모를 적절히 지원하는 것은 자녀의 장기적인 정신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관찰연구로, 부모의 이혼과 우울증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접 증명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부모의 혼인 상태만으로 자녀의 정신건강을 판단하기보다,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환경적 요인을 함께 살펴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