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제 기술이 상용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빛'이 되어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병원그룹 줄기세포연구팀(이동률·정영기 교수)은 29일 경기도 성남의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성공률을 7.1%로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기존 1%대에 그치던 성공률을 대폭 향상시켜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은 이 연구 결과의 발표에 대해 "줄기세포 치료에 혁신을 가져올 이벤트"라며 "10년 전 황우석 사건 이후 관심에서 멀어진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치료가 임상에 가까이 다가왔다"고 평가했다.

◇ 효율성 높인 배아줄기세포 어떻게 만들었나
연구팀은 복제 세포의 분화를 방해하는 효소를 찾아내 이를 억제함으로써 효율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세포가 분열하기 시작하면 2세포기, 4세포기, 8세포기 등의 단계를 지난다. 배아줄기세포는 그다음 단계인 '포배기'에서 채취할 수 있다.

그런데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는 정자와 난자가 만난 일반 배아와 달리 8세포기에서 분화를 멈춰 애써 구한 귀한 난자를 버리게 되는 일이 반복됐다.

연구팀은 일반 배아와 체세포복제 배아의 세포 분열 차이를 비교·분석한 결과 체세포복제 배아에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특정 효소(H3K9me3)가 활성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효소를 억제하는 효소(KDM4A)의 메신저RNA(mRNA)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포배기까지 진행하는 배아 수를 크게 늘렸고, 실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채취율도 크게 향상시켰다.

◇ 배아줄기세포로 맞춤형 환자치료 가능할까
배아줄기세포는 적절한 자극으로 신체 내 수많은 장기를 구성하는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

망막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입하면 망막이, 신경세포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입하면 신경세포가 되는 식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차의과학대학 이동률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기존에는 굉장히 우수한 소수의 난자에서만 체세포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필요한 난자를 10명에게 기증받아도 이 중 1∼2명의 난자만 사용할 수 있었고, 그중에서도 배아줄기세포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체 성공률로 따지면 채 1%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로 난자 100개당 7개 정도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얻어낼 길이 열렸다.

또 특별히 우수한 난자가 아닌 일반 난자로도 배아줄기세포를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생산력을 크게 높였다.

이동률 교수는 "시험관아기 시술의 성공률이 과거 초기에 5%에서 현재 40% 이상에 도달한 것처럼 전세계 연구진의 노력으로 배아줄기세포 채취 성공률이 지금보다 2∼3배 정도로 좋아지면 더 뛰어난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배아줄기세포에 쓰인 체세포는 실제로 망막질환이 있는 환자 3명에게서 채취한 것으로, 연구팀은 '환자 맞춤형 체세포복제 줄기세포 치료제' 5개를 이미 만들었다. 연구팀은 올해 안에 임상 시험을 신청할 방침이다.

실제 치료가 성공하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제가 시력을 잃은 환자에게는 진짜 '빛'이 될 전망이다.

◇ 윤리적 논란 해소가 관건
배아줄기세포 치료제에는 배아를 훼손하는 것이 생명체를 훼손하는 것과 같다는 종교·윤리계의 문제 제기가 뒤따른다.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배아줄기세포 제조 과정에서 세포를 파괴하는 행위는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파괴하는 것은 난자, 즉 세포이지 생명체가 된 배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난자 채취 과정에서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차 회장은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면 난자 15개 이상이 나오는데 실제로 사용하는 난자는 1∼2개에 불과하다"며 "남는 난자를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도록 하면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이렇게 개발된 줄기세포치료제의 임상시험이 승인을 받으려면 일반 의약품처럼 품질, 독성 시험 자료를 확보하고 생산 시설이 일정 기준 이상을 갖췄다는 점을 증명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은 짧게 수 개월에서 길게는 수 년까지 걸린다.

식약처 관계자는 "노하우가 있는 회사는 각 단계마다 병목 현상 없이 수월하게 임상 시험 승인을 받지만, 익숙하지 않은 회사는 이 단계에서 예측할 수 없이 세월을 허송하는 경우도 있다"며 "차병원그룹은 임상시험 경험이 풍부해 승인까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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