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환자가 소규모 병원으로 옮겨도 된다는 의사 소견이 있고, 입원 당시 '의사 판단을 따르겠다'는 약정을 했더라도 무조건 퇴원시킬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3부(이인규 부장판사)는 상급종합병원인 A대학병원이 입원 환자 B씨를 상대로 낸 퇴거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8일 밝혔다.
B씨는 군 복무 중이던 2011년 10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A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아버지는 보호자 자격으로 입원 약정서에 서명하면서 '담당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퇴원 결정이 있을 때 이의 없이 따르겠다'고 동의했다.
이후 B씨는 수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의식만 있을 뿐 사지가 마비돼 대화와 식사, 운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2012년 3월부터 B씨는 재활의학과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튜브로 체내에 직접 투입하는 방식으로 음식물을 섭취하고, 사지마비로 관절이 경직되는 일을 막고자 운동치료, 작업치료, 열전기치료 등 각종 재활치료도 받았다.
B씨의 입원 기간이 길어지자 병원은 그해 12월부터 B씨에게 수차례 퇴원을 요청했다. 이듬해인 2013년 10월엔 진료계약을 해지하고 B씨를 상대로 퇴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병원은 B씨의 사지마비 상태 등에 변동이 없고 활력 징후(vital sign)가 안정적이며, 본 병원보다 규모가 작은 2차 의료기관에서도 입원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치의 소견을 퇴원 근거로 제시했다.
B씨의 아버지가 담당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따르기로 약정한 점, 중증 환자가 몰려 병실이 부족한 상급종합병원의 여건, 장기입원에 따라 B씨의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일부가 삭감된 점도 진료계약 해지 사유가 된다고 병원 측은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B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씨가 2차 의료기관으로 옮겨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태라도 병실 부족, 요양급여 삭감, B씨 아버지가 서명한 입원 약정서 내용 등이 진료계약 해지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의료법상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만 진료 요청을 거부하고 퇴원을 요구할 수 있다"면서 "B씨는 사지마비에 따른 관절 경직 등을 예방하거나 호전시키기 위한 재활치료가 필요하며 입원 필요성도 있다고 판단된다"며 병원 측이 제시한 퇴원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장기입원으로 B씨의 요양급여가 삭감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단순 물리치료가 아닌 작업·운동치료 등의 재활치료가 필요한 사람의 경우 상급종합병원의 요양급여가 넓게 인정된다"는 관련법상 근거를 들어 퇴원 사유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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