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공식 발표했다.
이 부회장이 공식석상에 나와 사과문을 낭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991년 12월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것도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부회장이 이날 오전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특별기자회견에 직접 나온 것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유행의 진원지로 국민적 비판을 받아온 점 등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부회장이 지난달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공식적으로도 병원 운영의 최고책임자 자리를 맡고 있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주체다.
이날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이 부회장을 소개하면서 '이재용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이 입장 발표를 하겠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이 부회장은 '머리 숙여 사죄한다', '제 자신 참담한 심정', '책임을 통감',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등의 어구로 사과문을 발표하는 자세를 누누이 강조했다.
특히 '저의 아버님께서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계신다'는 대목을 삽입해 이번 메르스 사태로 고통받아온 환자와 환자 가족 등에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
이 부회장이 그룹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육성으로 입장을 밝힌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5일 부친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맡고 있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그룹 승계를 위한 상징적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두 재단 이사장 자리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직과 함께 유지하고 있던 공식 직함이어서 이를 물려준 것은 삼성그룹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할 때 그룹 승계에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재계에서는 평가했다.
두 재단 이사장직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에 이어 이건희 회장이 맡아왔다.
아울러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삼성 오너일가로는 2008년 4월 22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과문 발표 이후 7년여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특검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고 진심으로 사과드리면서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적이 있다.
삼성 오너일가는 이번까지 큰 사건만 보면 모두 4∼5차례 걸쳐 대국민 사과 또는 거취 등과 관련해 입장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과거 이병철 선대회장은 1966년 이른바 한비사건과 관련해 한국비료 지분과 운영권을 국가에 헌납하는 한편 경영일선에서 후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은 2005년 7월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에 재산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기로 하면서 사과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은 삼성가 상속소송과 관련해 2012년 5월 유럽으로 출국하면서 "사적인 문제로 개인 감정을 드러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날 만 47세 생일을 맞은 이 부회장은 이번 사과문 발표를 앞두고 직접 수일간에 걸쳐 발표문을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수뇌부는 이 부회장의 발표를 위해 극도의 보안 속에 발표문 문안 작업 등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최근 메르스 사태에다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세로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지만 이번 사과문 발표를 계기로 정면돌파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메르스 사태 수습 이후 삼성서울병원의 위기대응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이어 삼성그룹 전반의 쇄신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메르스 사태가 수습된 후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방안이 검토됐으나 이 부회장이 하루라도 빨리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보여 사과문 발표 시기가 당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내부에서는 그동안 1년 넘게 진행돼 온 지배구조 재편 작업으로 그룹 전반이 어수선해진 가운데 '시스템의 삼성'을 복원하기 위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계열사간 유기적 협력체제 점검과 계열사 경영진단 등 후속조처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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