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박테리아가 생성하는 특정 독소에 어린 시절 노출되는 것이 전 세계적 현상인 50세 미만 대장암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장균(E.coli), 폐렴막대균(Klebsiella pneumoniae), 시트로박터 코세리(Citrobacter koseri)를 포함한 여러 유해 장내 박테리아 종은 콜리박틴(colibactin)이라는 유전독소(genotoxins)를 생성한다. 이 독소는 대장 세포의 DNA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손상된 유전자는 복구가 어렵고 궁극적으로 암 발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최근 20년 새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23일(현지시각) 연구 결과를 발표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 과학자들에 따르면, 젊은 대장암 환자에서 이러한 DNA 손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연구진은 아시아, 유럽, 남미, 북미 11개국의 대장암 환자 981명의 DNA를 분석했다. 종양은 대부분 고령층에서 발생했지만, 132명은 젊은 대장암 환자였다. 분석 결과, 40세 미만 환자의 종양에서 발견한 콜리박틴 관련 DNA 돌연변이가 70세 이상 환자보다 3.3배 더 많았다.
"40세 이하 조기 발병 대장암 환자의 약 50%에서 콜리박틴 노출의 뚜렷한 흔적이 확인 됐다"고 루드밀 알렉산드로프(Ludmil Alexandrov) UCSD 생명공학 & 세포·분자 의학 교수가 말했다.
이러한 DNA 돌연변이는 10세 이전 어린이가 콜리박틴에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돌연변이는 결장 세포의 DNA를 손상시켜 50세 이전에 대장암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알렉산드로프 교수는 미국과 영국의 어린이 약 30~40%가 장 내에서 콜리박틴을 생성하는 박테리아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40년 동안의 생활방식 변화가 콜리박틴 생성 박테리아가 장내에서 더욱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아이들을 더욱 취약하게 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 항생제 사용, 가공식품 소비 증가, 식이섬유 섭취 감소, 제왕절개 출산 증가, 모유 수유 감소, 어린이집과 같은 단체 보육 확대 등이 어린 시절 이 미생물에 대한 노출 증가의 원인일 수 있다"라고 알렉산드로프 교수는 말했다.
이와 관련해 탄수화물을 적게 섭취하는 식습관을 지속하면 장내 미생물 군집의 균형이 깨져 이콜라이(E.coli) NC101이라는 특정 대장균이 번성하고, 이 박테리아가 콜리박틴을 생성해 대장암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국제학술지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Nature Microbiology)에 지난달 게재된 바 있다.
보건복지부 국가 암 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암 발병률 순위에서 대장암은 갑상선암(12%)에 이어 2위(11.8%)다. 국제 학술지 란셋(Lancet)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특히 우리나라 20~49세 젊은 성인의 대장암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12.9명으로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세계 보건 기록에 따르면 최소 27개국에서 50세 미만 성인의 대장암 발병률이 지난 20년 동안 10년 마다 약 2배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2030년에는 대장암이 해당 연령대의 전체 사망 원인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과학자들은 콜리박틴의 역할에 대한 증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예방적 접근법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특정 박테리아를 제거하기 위한 프로바이오틱스(유익균)나 백신 개발이 포함된다.
"특정 미생물을 제거하려는 목표를 가진 개입이 이제 필요하다"고 미국 텍사스 대학교 MD 앤더슨 암센터의 크리스토퍼 존스턴(Christopher Johnston) 교수가 NBC뉴스에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접종 및 면역 기억을 생성하는 백신 접근법이 논리적인 다음 단계"라며,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잠재적으로 중요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암 연구소에 따르면, 대장암의 절반 이상은 예방 가능하다. 이 중 4분의1은 식이섬유 섭취 부족, 13%는 가공육 섭취, 11%는 비만, 6%는 알코올 섭취, 5%는 활동 부족과 관련이 있다.
영국 암 연구소의 데이비드 스콧 박사는 "많은 조기 발병 대장암 환자들이 어린 실절 일부 대장균 균주가 생성하는 콜리박틴이라는 독소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노출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식단을 포함한 여러 요인이 장내 미생물 군집 발달의 중요한 단계에서 교차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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