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속에는 늘 일정량의 암세포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모두가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은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를 공격해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되돌리는 방식의 새로운 항암 패러다임의 단초를 잡았다. 조광현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되돌리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저널 '어드밴스트 사이언스' 온라인에 게재되었다다.


지금까지의 항암 치료는 암세포를 방사선이나 약물 등으로 사멸시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치료는 주변의 정상세포까지 파괴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암세포를 파괴하지 않고 정상세포로 되돌릴 수 있으면 환자의 부담을 줄이면서 더 쉽고 빠르게 항암 치료를 할 수 있다.


통상 정상세포는 암세포로 바뀌기 직전에 임계 전이 단계를 거친다. 물이 100도에서 갑자기 끓는 것처럼 임계 전이 단계가 지나면 정상세포는 암세포로 변한다.


연구팀은 우선 대장암 환자의 세포를 이용해 임계 전이 상태에 있는 세포의 특성을 밝혔다. 단일 세포에 들어 있는 유전자 2만여 개의 발현 정도를 측정해 일렬로 놓고 비교했다. 양극단에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두고, 그 중간 단계인 임계 전이 상태에 있는 세포들을 두어 분석했다. 이어 세포의 디지털 트윈을 구축해 어떤 유전자가 임계 전이 상태와 관계가 있는지를 살폈다. 연구팀은 유전자 2만여 개 중 임계 전이와 관련된 유전자를 17개까지 추려냈다.


연구팀은 디지털 트윈 모델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였다. 그 결과, 암세포로 변하는 데 핵심적인 유전자를 발견했다. USP7이라고 불리는 이 유전자가 이번 연구에서 밝혀낸 대장암의 분자스위치다.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면 암세포가 정상세포로 되돌아간다는 것도 이번 연구에서 밝혀냈다. 연구팀은 화학적 억제제로 실제 대장암세포의 핵심 유전자 발현을 억제했는데, 암세포가 정상세포의 특성을 회복했다.


조 교수는 "암세포의 운명을 되돌리는 단서가 이런 변화의 순간에 숨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규명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향후 이 기술은 대장암뿐만 아니라 다른 암종의 치료법 개발에도 적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연구는 기존 항암 치료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응용해 기존 항암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암 가역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3년 전 스타트업 바이오리버트를 설립했으며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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