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기운이 온몸을 맴돌기 시작하는 연말이면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증가한다.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자, 질환도 만들어졌다. 흔히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부르는 '계절성정동장애'다. 계절성정동장애는 특정 계절에만 우울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큰 스트레스를 입을 만한 사건 없이 해당 계절마다 우울 증상이 나타나고, 계절이 끝날 때 사라진다. 보통 가을부터 겨울에 발병하고, 봄이 오면 낫는다.
일반적인 우울증과 달리 '우울'한 기분보단 활기가 저하하는 '무기력증'이 잘 나타난다. 만사가 귀찮고, 업무·공부 의욕이 떨어진다. 몸이 무겁고 축축 늘어진다. 생각 회전 속도가 감소하고, 말수는 준다. 주의력과 집중력도 떨어지고 회의적인 생각은 증가한다. 잠이 늘고, 식욕은 증가한다. 특히 탄수화물이 당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니, 불안·초조·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설득력 있는 요인은 '일조량 감소'다. 겨울엔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계절보다 햇볕을 오래 쬐지 못한다. 우리 몸은 일조량에 따라 세로토닌, 멜라토닌 등 여러 호르몬 분비량을 조절하는데, 일조량이 감소하다 보니 겨울엔 호르몬 분비가 교란된다. 호르몬에 따라 조절되는 수면 시간은 증가하고, 기분은 처진다.
'연말'이 성과 평가 기간인 것도 계절성 우울증을 유발하는 데 한몫한다.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은 헬스조선에 게재한 칼럼에서 "겨울만 되면 울적해진다는 사람을 상담해 보면 현재에 집중하기보다 과거의 상념에 젖어 있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데 주의를 빼앗기는 경향이 컸다"며 "'한 해 동안 제대로 이룬 게 하나도 없어'라며 후회에 빠지고 '내년에는 더 힘들어질 것 같아'라고 걱정하니 우울해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주로 성취 열망이 과도한 사람일수록 계절성정동장애를 앓을 위험이 컸다.
이 외에도 계절성정동장애가 잘 나타나는 대상이 있는데, 가족력이 있는 사람, 양극성 장애(조울증) 환자, 20~30대, 여성, 순환 근무자다. 다만, 나이가 올라갈수록 계절성정동장애 발병 위험은 감소한다.
계절성정동장애 재발을 막는 치료제는 없다. 다만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다. 일단 무기력할수록 움직여야 한다. 침대 위에만 머물면 오히려 증상은 악화한다. 운동은 필수다. 틈나는 대로 야외로 나가 걸어, 몸을 움직여야 활력이 생긴다.
햇볕을 쬐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광선 요법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루에 30분 정도 5000~1만 5000 럭스(Lux) 만큼 빛나는 상자로부터 30~60cm 떨어진 곳에 앉아있도록 하는 치료다. 햇볕은 일어나자마자 충분히 쬐는 게 가장 좋다. 매년 재발하는 환자라면 미리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차단제 SSRI, 도파민 활성도를 높이는 부프로피온 등이 주로 처방된다. 조울증이라면 다른 치료 약제가 필요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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