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에서 또 쓰러졌다. 지난 8월 말 남미 명문 클럽인 나시오날(우루과이)과 상파울루(브라질)의 축구경기에서 나시오날 수비수 호세 이스키에르도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져 남미 축구계가 충격에 사로잡혔다. 27년 삶을 끝장낸 것은 부정맥이었다.


부정맥은 팔팔한 스포츠 선수도 쓰러뜨린다. 2021년 덴마크와 핀란드 대표팀의 경기 때 손흥민과 호흡을 맞췄던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힘없이 쓰러진 장면은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맨체스터 시티, FC 바르셀로나 등에서 활약했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최근 부정맥 탓에 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2000년 롯데 자이언트 임수혁이 부정맥으로 쓰러졌다 10년 가까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있다가 이승을 떠났다. 2011년엔 디디에 드로그바와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해서 '영록바'로 불리던 신영록(제주 유나이티드)이 대구FC와의 경기에서 부정맥으로 쓰러졌다. 신영록은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지만 그라운드는 떠나야만 했다.


스포츠 중계 중 선수가 쓰러지는 장면이 극적이어서 그렇지, 사실 수많은 사람이 갑자기 부정맥의 희생양이 된다. 심장동맥질환, 심부전증, 갑상선기능장애, 고혈압 등 다른 병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그런 병과 관계없이 부정맥으로 쓰러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한심장학회가 2007~2015년 급성 심장마비로 숨진 1979명을 분석했더니, 14.7%가 유전성 부정맥이 원인이었다. 다른 여러 조건들을 종합하면 통계적으로 하루 약 100명의 심장돌연사 사망환자 중 매일 14명이 유전성 부정맥으로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다. 그만큼 부정맥은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와서 생명을 앗아가 남은 가족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다.


부정맥은 심장의 전기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병을 말한다. 심장은 산소와 영양분을 담은 혈액을 우리 몸 구석구석에 실어보내는 펌프다. 이 펌프는 전기로 움직인다. 우심방에 있는 '동방결절'이라는 곳에서 전기를 만들면 0.2초 동안 전깃길을 따라 심장 전체에 퍼진다. 심방이 먼저 '쫙쫙' 오므렸다 펴면 곧바로 심실이 '쫘악쫘악' 좀더 큰 운동으로 박동하면서 피를 돌린다. 이 전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심장이 너무 늦게 또는 빠르게 뛰거나 불규칙적으로 박동하는 것이 부정맥이다.


치료는 부정맥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손흥민의 파트너였던 에릭센은 그라운드에서 심폐소생술과 함께 자동 제세동기(AED)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삽입형 제세동기(ICD)를 체내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다. ICD는 심실빈맥 환자의 맥박을 감시하고 있다가 맥박이 갑자기 빨라지면 전기충격을 줘서 심장을 정상화시킨다. 에릭슨은 ICD의 도움으로 그라운드에 복귀, 현재 덴마크 국가 대표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맥박이 지나치게 느린 '서맥성 부정맥' 환자는 인공적으로 전기신호를 만들어 심장을 뛰게 하는 '인공심장박동기'를 체내 삽입하는 치료를 받는다. 심방빈맥과 심방세동 환자는 심장의 정상적 전기 흐름을 방해하는 부위를 지져 병의 뿌리를 제거하는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부정맥 환자는 베타차단제, 칼슘길항제(칼슘 채널 차단제), 디곡신(digoxin), 항부정맥제 등 자신의 병세에 따라 약을 복용하는데 최근엔 근원치료에 따라 약을 끊는 환자도 늘고 있다.


다만, 많은 부정맥 환자가 자신의 병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부정맥 환자 10명 가운데 1~2명이 자신의 병을 공황장애로 착각하고 병을 키운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조기에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는 환자가 급사하는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자신의 심장이 두근두근하며 정신이 아찔했던 기억이 있거나 기절, 순간적 흉통, 목 부위의 극심한 불쾌감, 호흡곤란, 극심한 어지럼증 등이 있었다면 부정맥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집안에 누군가 급사했던 가족력이 있거나 부정맥, 실신 등의 과거력이 있는 사람과 그 가족도 검사 대상자이다. 부정맥은 보통 증세가 사라지면 심전도를 찍어도 멀쩡한 것으로 나타나기 일쑤여서 증세가 나타날 때 지체하지 말고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병원이나 건강검진센터에서는 심전도 검사, 24시간 심전도 검사, 운동부하 심전도 검사 등을 통해 부정맥을 확진한다. 그러나 몇 달에 한 번씩 발생하는 부정맥의 경우 이들 검사에서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연속 심전도 검사로 부정맥의 오진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이게 됐다. 심전도 패치를 가슴에 부착해서 심전도를 계속 관찰하는 것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동안 계속 모니터링하는 '연속심전도(원내)와 패치를 붙인 상태로 귀가하게 해 하루 동안 심전도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는 '연속심전도(1일)'를 통해 이전에 놓쳤던 부정맥을 잡아내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검사법이 아니라 환자가 검사를 받는 것이다. 부정맥은 멀쩡한 스포츠 선수도 쓰러뜨리고 생때같은 젊은이도 쓰러뜨린다. 가족력, 과거력이 있거나 최근 상황이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부정맥 검사를 받는 것이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슬픔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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