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국내 항암 신약 중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받으며 유한양행이 오픈이노베이션의 첫 결실을 맺게 됐다. 미국 보스턴의 한 실험실에서 출발한 신약 후보물질이 국내 제약사와 글로벌 빅파마를 거치며 벨류업에 성공한 보기 드문 케이스다.
신약 기술 경쟁력이 있는 국내외 바이오벤처와 손잡고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제약·바이오 생태계를 키우는 방식이다. 유한양행은 이 같은 방식으로 오는 2026년까지 신약을 개발해 '제2·제3의 렉라자'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22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렉라자는 국내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이 신약 개발을 위해 2008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한 제노스코에서 시작됐다. LG화학에서 당뇨병 신약 '제미글로' 개발을 맡았던 고종성 박사는 제노스코 대표로 취임하며 항암 분야에 집중했고 신약물질 '레이저티닙'을 발견했다.
고 박사는 2013년 해당 물질을 테스트해보고 싶다며 한국으로 건너와 조병철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연세암센터 교수를 만난다. 조 교수는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 요법'의 1상, 2상, 3상 임상시험을 주도한 인물이다. 인력과 자본, 경험 부족 등의 한계로 첫 만남이 개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한양행이 2015년 해당 물질을 제노스코에서 기술 이전 받은 뒤, 조 교수를 다시 찾았고 국산 31호 신약 '렉라자' 개발이 본격화 된다.
개발 초기 글로벌 시장에서 렉라자는 찬밥 신세였다. 국내에서 개발된 항암 신약이 일부 존재하지만 FDA에서 승인 받은 사례가 없었던 만큼 냉소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유한양행은 2017년 중국의 한 제약사에 해당 후보 물질을 기술수출 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재 비소세포폐암 표준 치료제로 꼽히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가 2차 급여를 받는데 성공하며 후발주자란 꼬리표까지 붙었다.
중국에서 실패는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당시 연구개발(R&D)을 총괄했던 오세웅 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장은 중국 제약사와 딜이 무산된 이후 현지에 체류하며 얀센 관계자를 만나게 된다. 이후 싱가포르에 있는 얀센 지사를 거쳐 미국의 글로벌 헤드까지 접촉하는데 성공했고, 유한양행은 이듬해인 2018년 얀센에 1조 4000억 원 규모로 글로벌 개발·판매 권리를 기술수출하는 데 성공한다. 글로벌 제약사로 기술 수출한 경험이 적었던 만큼 오 전 소장은 미국 현지에서 사용하는 정부 문서 양식, 기업 거래 문서 양식 등을 곁눈질 해가며 관련 자료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렉라자는 2021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로 조건부 허가를 받으며 국산 31호 신약 타이틀을 거머쥔다. 2023년 6월에는 국내에서 적응증을 1차 치료제까지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유한양행 측은 1차 치료 급여가 확정되기 전까지 렉라자를 폐암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지원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은 "폐암 환자 중 3세대 치료제를 복용하고 싶어 하는 환자가 많고 그분들이 국회나 보건복지부, 대통령실 등에 청원을 넣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팠다" 며 "폐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께 조금이라도 빨리 약을 드릴 수 있게 하자는 내부 의견이 많았다"고 취지를 밝혔다. 유한양행은 환자 한 명 당 연간 약 7000만 원(비급여 치료제 기준)을 부담하는 대신 글로벌 신약에 필요한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유한양행은 창사 100주년이 되는 오는 2026년까지 '제2·제3 렉라자'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김열홍 유한양행 R&D 총괄 사장은 올해 초 '성공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강조했다. 유한양행은 지아이이노베이션에서 도입한 알레르기 치료제 'YH35324'의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사이러스테라퓨틱스, 카나프테라퓨틱스에서 도입한 'YH32367'도 면역항암제로 개발 중이다.
조 사장은 "렉라자의 FDA의 승인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유한양행 R&D 투자의 유의미한 결과물" 이라며 "이번 승인이 종착점이 아닌 하나의 통과점이 되어 R&D 투자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혁신신약 출시와 함께 유한양행의 글로벌 탑 50 달성을 위한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의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