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바뀌며,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감염병 매개종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빨간집모기가 출현시기를 앞당기고 쯔쯔가무시증을 퍼뜨리는 진드기가 서식지를 넓힌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모기·진드기 매개 감염병이 팬데믹(대유행) 위험을 높인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5일 질병청에 따르면, 지난 50년동안 작은빨간집모기의 첫 출현일자는 약 100일 빨라졌다. 1970년대만 해도 6월에 내려졌던 일본뇌염주의보가 2010년대 후반부터 3월로 당겨졌다. 해마다 작은빨간집모기가 최초로 확인되면 전국에 주의보가 발령된다. 올해도 지난 3월 29일 전라남도와 제주에서 작은빨간집모기가 발견되면서 주의보가 내려졌다.
질병청 관계자는 "최근에는 더운 지역에서 서식하는 빨간집모기와 동양집모기도 국내에 유입돼 일본뇌염 전파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름철 대표 모기인 말라리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앞서 질병청은 지난 18일 전국에 말라리아주의보를 내렸다. 이는 작년보다 한 주 빠른 기록이다.
모기뿐 아니라 쯔쯔가무시증을 매개하는 활순털진드기도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활순털진드기는 2011~2019년만 해도 주로 수도권과 남부 지방을 잇는 한계선에 분포했다. 하지만 지난해 조사 결과 경기도와 강원 북부를 잇는 한계선까지 북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여년새 진드기의 서식지 위도가 약 1도 오른 셈이다.
감염병 매개종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데에는 따뜻해진 기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기상청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봄의 평균 시작일은 1910~1940년보다 17일 빨라졌다. 같은 기간 여름도 11일 당겨졌다.
양영철 을지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기온이 16도 정도 되면 월동 모기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며,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면서 겨울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진 탓에 모기 출현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통상 겨울철에는 습도가 낮아 월동모기들이 말라죽고 20%만 살아남곤 했는데 이젠 겨울에도 비가 많이 내려 습도가 높게 유지되면서 모기 개체 수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모기·진드기 매개 감염병이 팬데믹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건 삼육대 스미스학부 교수는 "열대성 질환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항만, 공항 등에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서울시 모기 예보제도 기존 5~10월이었던 기간을 4~11월로 확대했다"고 밝혔다.
일본뇌염은 고열과 두통을 유발하는데 심한 경우 의식 장애, 경련, 혼수, 사망도 초래할 수 있다. 말라리아는 발열, 오한, 구토, 설사 등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다. 쯔쯔가무시증의 주요 증상은 피부 발진이다. 주요 감염병 중 백신이 있는 건 일본뇌염뿐이다.
Copyright © 의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