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세가 급증하면서 4차 대유행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4개 보건의료단체는 의료인들의 진료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정부의 비급여 통제강화정책에 반발하는 공동의 입장을 밝혔다. 의료계는 9일 오후 1시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래와 같은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
정부의 전체 비급여 통제 및 관리 강화정책 추진을
즉각 철회하고 원점 재검토를 강력히 촉구한다.
현재 일일 확진자 1,000명을 넘으며 코로나19 제4차 대유행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수고하고 헌신하는 의료계에 격려와 힘을 북돋워주기는커녕 오히려 의료인들의 진료를 위축시키고 옥죄는 제도 강행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4개 보건의료단체는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명하며, 그 대표 사례인 비급여 통제강화정책에 대해 공동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개정(정춘숙 의원의 대표 발의)에 따라 신설된 의료기관의 '비급여 보고제도'는 의료기관의 장이 비급여 진료비용(제증명수수료 포함)의 항목, 기준, 금액 및 진료내역 등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자료 미제출 등의 경우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까지 부과토록 하고 있다.
'비급여 보고제도'는 의료법 개정 이후 하위법령이 이미 개정되었고 현재 세부시행계획안 마련이 진행 중으로, 최근 정부는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를 통해 7월 중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공개에 관한 기준」 고시 개정(안)을 확정하고 8월 중 공포·시행 예정임을 밝혔다.
'비급여 보고제도'는 비급여 통제의 목적으로 시행되는 제도로 헌법재판소가 비급여 제도를 통한 시장기제의 담보라는 의료기관 당연지정제의 전제 조건을 훼손하고 공급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전형적인 규제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동안 의료계는 '비급여 보고제도'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를 구성, 그동안 의료계와의 협의 내용을 배제한 채 독단적·일방적으로 비급여 보고제도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의료소비자들의 알권리 및 의료선택권 보장을 위해 비급여 관리를 강화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직업수행의 자유 등 환자와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발상이자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비급여는 한정된 재원으로 필수의료 중심의 보험 혜택을 부여할 수밖에 없는 공보험의 한계에서 의사의 숙련도, 치료 방식, 사용 장비 및 재료 등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고 신의료기술 개발 등 의료발전을 견인하는 등의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 가중의 원인을 비급여 제도로 정하고 그 책임을 의료계에 전가하고 있으며, 일방적인 급진적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야기된 의료 이용량 증가 및 의료비 증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엉뚱하게 비급여의 전면적 관리와 통제를 내세우고 있다.
비급여 보고의무 등 비급여 통제 강화를 통하여 의료기관별 비급여 진료비용에 대한 단순한 가격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제화하는 것은 자율에 의한 가격 형성이라는 시장의 기능을 왜곡하고, 제공 의료서비스에 따른 질적 차이를 왜곡하는 가격 정보를 제공하여 오히려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함과 동시에 의료기관에 대해 불신을 조장하게 될 것임이 자명하다.
비급여 제도는 과거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도입 당시부터 이어져 온 고질적인 저수가 정책 하에서도 우리나라 의료를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키는데 상당한 동기 부여를 해온 순기능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음에도 만약 정부가 비급여 통제정책을 통해 관리 및 억제하려 한다면, 고질적인 저수가 구조에 대한 혁신적인 개편을 통해 적정수가를 보장하는 등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비급여 제도는 그 자체가 정부가 아닌 의료기관이 가격을 정하고 환자가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정부의 가격 관리 밖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보장성 강화 등을 이유로 이제서야 정부가 이를 관리의 영역으로 포함시켜 비급여 보고제도 등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모순에 빠진 것이라 할 것이다.
특히 지난 2002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위헌 소송(2002. 10. 31. 99헌바76, 2000헌마505(병합) 전원재판부) 당시 헌법재판소가 "당연지정제 합헌 결정의 근거"로 "국민이 진료를 받고자 하는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료보험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은 의료보험에 의하여 보장되는 급여부분 외에 의료소비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자신의 부담으로 선택할 수 있는 소위 비급여대상의 의료행위를 함께 제공하고 있음"을 들고 있는바,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만일 정부가 지금처럼 '비급여 보고제도'를 강행한다면 정부 스스로 헌재의 당연지정제 합헌 결정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당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고 지금과 같이 비급여 통제 및 관리 강화, 나아가 비급여를 없애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당연지정제에 대한 재검토도 당연히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의사의 진료권, 직업수행의 자유 및 환자의 선택권 등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제도이며, 질병의 치료방법에 대한 개인의 선호 및 기호가 무시된 채 건강보험이 허용하는 범위 내의 보편적 진료서비스만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는바, 당연지정제에 대한 폐지여부를 검토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통해 건강보험 요양기관 편입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비급여 통제가 강화됨으로써 의료기관,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받게 될 과도한 행정 부담은 의료현장의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에 따른 결과이다. 행정편의적 발상에 기인한 보고의무로 인해 의료법상 환자의 진료에 최선의 의무를 다해야 할 의료기관의 기본 책무가 지장 받을 수 있음을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비급여 항목을 보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현실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은 채 밀어붙이기식으로 강행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제도의 운영방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에 코로나19 확진환자가 1,000명을 넘어서는 등 심각한 감염병 재난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의료기관에 책임과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보건의료 4개 단체는 정부가 이제라도 '비급여 보고제도'등 통제강화 정책의 졸속·일방적 추진을 즉각 멈추고 의료계와 심도 있는 협의 및 합의를 통해 의료기관과 환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의료인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의료계와 함께 제도를 개선해 나가길 거듭 요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입장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공급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보건의료 4개 단체는 위헌소송, 비급여보고 전면거부 등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강력한 대응 조치가 불가피함을 분명히 밝힌다.
Copyright © 의약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