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속편한내과 김영선 원장
어느 날 소화불량의 주 증상으로 60대의 여자분이 내원했다. 챠트를 검토해보니2년 전 필자가 위 내시경 검사를 통해 조기위암으로 진단한 후 수술을 위하여 대학병원으로 전원(轉院)을 했던 분이었다.

당시 필자는 당연히 위 수술을 했을 거라고 짐작을 하고 자연스럽게 그 동안 경과가 어떠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환자분은 수술은 안 받았고 다른 방법으로 위암을 완치시켰다고 말하면서 확인을 위하여 위내시경 검사를 다시 받고 싶다고 이야기 하였다.
일단 환자의 말을 무조건 부인할 수 없어 위 내시경 검사를 다시 시행하기로 하였다. 위 내시경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2년 전 조기 위암 상태에서 악화되어 진행성 위암의 소견을 보였다.

환자의 기대와 실제 검사 결과가 판이하게 다른 이런 경우 의사는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과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까? 실망한 환자를 어떻게 일으켜 세워 다음 단계의 치료로 향하게 할까? 최종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날 환자는 딸과 남편이 함께 내원하였고, 필자는 결과를 설명하면서 지금이라도 수술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라고 권고해 주었다. 그러나 딸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수술을 안 받는다면서 강력히 치료를 거부했다. 그 순간 보호자인 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이 보였다.

그 날 이후로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그 환자의 입장에선 수술을 받지 않고 자신을 삶을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수술을 받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의사라는 직업은 특성상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직간접적으로 참여를 해야만 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질병이라는 것은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족의 문제이고 치료과정에 있어서 의사가 내리는 결정이 그들 모두 삶에 깊숙이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내가 내린 결정이 아주 위중한 환자의 생명과 환자 가족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그 중압감 때문에 때로는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정확한 정답을 말하기 힘든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환자들도 마찬 가지로 그들 앞에 높인 질병이라는 장벽과 치료 및 그 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그들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이렇듯이 강한 질병 앞에선 환자나 의사나 다 두려워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만약 병에 걸린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본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였는데 아버지는 파킨슨병으로 손을 몹시 떠는 증상이 있어 ‘심부 뇌자극술’이라는 특수 뇌수술 치료를 권고 받았고 딸은 아버지가 이 치료를 받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아버지는 당신의 인생이라며 치료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의사의 한마디가 이 환자의 마음을 돌려 놓았다. 그 한마디는 질병은 당신의 몫이지만 당신이 병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와 치료 과정은 당신의 삶인 동시에 딸의 삶이기도 하다. 그러니 딸의 삶을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 만이라도 보여달라는 말이었다.

우리들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병이 걸리지 않고 건강할 수 있을까’란 문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누구도 병의 그물망을 벋어나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들 삶이다. 이런 면에서 이제는 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병은 우리의 삶을 위협하지만 병에 걸렸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이나 태도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공유된 삶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선 원장(서울 속편한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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